The Best of Shin Hae-chul

Struggling

 

신해철.. 한동안 내 뇌리에서 사라져있던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과 함께 몇가지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다. 이 인간 드디어 결혼을 한다더니 이제는 넥스트를 재결성한단다. 올해 12월말에 재결성을 한다는데 지금쯤은 아마 곡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다. 이제 기대되는 12월달을 기다리면서 지내던중, 이 베스트앨범이 시중에 풀렸다. 너무 오랜만에 나온 앨범이니만큼 거금 2만5백원을 투자해서 샀다. 새로운 곡은 없고 단지 기존의 곡들을 성격에 맞추어 3장의 CD에 담은 형태이다. 1장의 CD는 동영상을 담아서 총 4장의 CD가 금박을 입힌 상자속에 고급스럽게 담겨있다. 제목은 "Struggling"... 그의 역사를, 아니, 현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역사를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신곡이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12월을 기다리면서 다시 예전곡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CD 4장과 부클릿과 이미지카드들이 담겨있다. 신곡이 없는만큼 쓸 내용은 많지 않지만 강헌의 신해철의 연대기를 써넣은 것이 마음에 와닿아 여기에 남긴다. 강헌 그 역시 훌륭한 평론가라고 생각된다.

 

1장 - 밴드-무한궤도의 함장으로 이륙하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이 해의 두 가요제는 무한궤도라는 캠퍼스 밴드와 이상은이라는 여성 아이돌 스타를 배출했다. 특히 가장 전통적인 역사를 지닌 대학가요제에서 밴드가 그랑프리를 획득한 것은 원년인 1977년 서울농대의 샌드페블스 이후 십일년만의 작은 사건이다. 이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인 신해철은 현란하면서도 산뜻한 키보드 전주를 시작으로 로큰롤의 기본에 충실한 완벽한 후렴구에 이르기까지 아마츄어론 볼 수 없는 완결적인 구성을 지닌 <그대에게>를 통해 그가 90 대중음악사를 이끌어갈 재목임을 한순간에 증명한다. 그는 송골매가 사라진 이후 주류의 시장에 우뚝 선 첫 번째 밴드의 리더였으며 동시에 날카로운 지성의 문제의식을 한국 대중음악의 혈관 속에 주사한 최초의 아티스트가 되었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탑재한 무한궤도의 데뷔 앨범은 이후 십오년간 이어질 신해철의 첫 출사표이며 시장의 성공작이다. 그는 6~70 나이트클럽 밴드의 서구 추종적 성격과 캠퍼스 밴드의 아마츄어리즘의 한계를 지양하며 90 한국 록 음악의 지형도가 보다 복합적이며 보다 세련된 스타일을 채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그리고 그 선언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2장 - 솔로 아이돌 스타로 약진하다.

 

무한궤도가 한 장의 앨범을 끝으로 멤버들 각자의 길을 선택했을 때 솔로로 데뷔하면서 특유의 허스키한 저음으로 러브 발라드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를 차트의 톱으로 올려 놓았을 때만 해도 신해철은 발라드 장르의 수많은 젊은 경쟁자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작사, 작곡, 보컬은 물론 키보드와 기타, 그리고 프로듀싱까지 책임질 수 있었던 음악적 역량이 그의 동년배 경쟁자들과 구별시켰다. 발라드는 그의 대중적 기반을 굳히는 전술적 고리의 구실을 담ㄷ강했을뿐이며, 90가 개막되는 첫머리에서 그는 댄스뮤지션이 아니면서 랩을 고용하는 시도가 이 스매쉬 히트의 뒷면에 자리한 <안녕>에서 나타난다. 그는 앞면에서 '사랑의 순수한 지소'을 진술하면서 바로 뒷면에선 '사랑의 추악함과의 결별'을 다른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안녕>에서의 음미할 만한 랩 부분, 즉 'You didn't want a flower, you wanted honey / You didn't want a lover, you wanted money / You've been telling a lie, I just wanna say "Good-bye"' 는 바로 자신이 걷게 될 미래에 대한 전조등이 아니었을까?
솔로 데뷔 앨범의 순탄한 성공은 원맨밴드로서의 신해철을 성큼 성장시켰다. 그를 무수한 '스타'의 늪에서 '아티스트'로 가는 좁은 문앞에 서게 만든 동력은 사랑에 대한 시시껄렁한 동어반복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구성하는 '존재'의 요건에 대해 성찰하려는 집요한 노력이었다.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고 있던 90 대중의 감수성을 견인하는 일급의 싱어송라이터 앨범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그의 두 번재 솔로 앨범 <<Myself>>의 내면적인 의의는 심신과 김민우와 같은 아이돌 스타와 한판 승부를 겨루는 한편으로 아티스트로의 이행을 감지할 수 있는 빛나는 통찰력을 발전시켜 간 것이다. 그것은 <재즈카페>에서 보이는 산업 사회의 도시문명에 대한 묵시록이기도 하고, 아버지로 표상되는 가족 관계에 대한 따뜻하고 준렬한 성찰이기도 하며, 음악만이 자신의 밥줄이자 구원의 통로인 바로 자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한 <나에게 쓰는 편지>같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노력이 단순히 노래말의 메시지 차원에서 머무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법을 찾기 위해 기꺼이 음악의 암사지도를 순례하고 실험하려는 몸부림에 잇닿아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시점에서 약간의 실소를 동반하는 디스코그래피가 있다. 솔로 1집과 2집을 성공시킨 신해철과 당대의 주류 발라드의 스타 변진섭과 각각 4곡씩을 한면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한 조인트 앨범이다. 한국에서 스타가 된다는 것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세금까지 물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앨범은 신해철과 변진섭이 만난 것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의 사장님이 만난 것이었다. 두 개의 리믹스 버전과 하나의 리메이크 트랙중 주못할 만한 넘버는 신중현의 작품으로 펄시스터스가 불렀던 <커피 한잔>. 시장의 논리에 의해 황당한 포맷으로 급조된 이 앨범에서도 신해철의 지향점은 슬몃 엿보인다.

3장 - 다시, 록 밴드를 모색하다.

 

2002년의 시점에서 조망하자면 그래도 이들과 듀스, 강산에, 안치환등이 사자후를 터뜨렸던 이 지점이 90 최고의 황홀경이라 할 만하다. 대학가요제를 거쳐 솔로 아이돌 스타의 터널을 지난 신해철은 보다 깊은 세계로 걸어 들어갔고, 서태지는 보다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태도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신해철이 주도하는 그룹 넥스트는 '새로운 실험집단 New Experimental Team'이라는 팀 이름에 걸맞게 2년만에 두 번째 앨범 <<넥스트의 귀환 제1부 '존재' The Return Of N.EX.T Part I - The Being>>라는 긴 타이틀의 앨범을 내놓았고,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앞의 앨범인 <<Home>>에서 도전했던 산업사회의 문명비판을 보다 근원적인 차원으로 심화시켰다.
그 근원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세대이다. 그는 오프닝 곡 <껍질의 파괴 The Destruction of the Sell>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 가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말하게 하라'라는 고통스런 질문에서 시작하여 음습한 분위기가 감도는 메틀음악인 <이중인격자>의 '내 마음 깊은곳에는 수많은 내가 있지만 그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로 자신속에 또아리 틀고 있는 혼돈을 한발짝 더 승압하기도 하고, 시야를 자신에서 자신의 세대로 넓혀 '아닌건 아니라고 큰 소리로 말을 해봐'(<나는 남들과 다르다>)라고 촉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이 앨범의 대단원인 <The Ocean:불멸에 관하여>에서 한국대중음악사를 통털어 극히 보기 드물었던 초월의지의 서사시를 펼쳐놓는다.
1991년의 앨범 <<Myself>>에서 보여준 멀티 장르에 대한 장악력이나 그 이듬해에 조직한 그룹 N.EX.T(New Experiment Team)를 통해 야심만만하게 토해낸 컨셉트 앨범 <<Home>>의 통찰력은 신해철이 단순히 십대의 감수성에 야합하는 아이돌 스타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가진 독자적인 '예술까'임을 훌륭히 증명하는 것이었다. 사실 대학가요제 출신들로 구성된 그룹 무한궤도에서의 활동 이후, (무한궤도는 단 한 장의 앨범만 내놓았을 뿐이지만 한국 대중음악이 90로의 진입을 목전에 둔 지점에서 중요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 하나의 경과구이다. 신해철이 리드했던 이 그룹안에 바로 그룹 015B의 주력인 정석원과 조형곤이 참여하고 잇었던 것이다) 그는 다양한 악기의 순례를 통해 존재하는 장르의 발성법의 문을 두드려 왔으며 그의 최대 걸작 앨범 << The Return Of N.EX.T Part I - The Being>>은 바로 이와 같은 자신의 존재근거에 대한 혼돈으로 가득한 응답인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이 앨범은 한명의 젊은 뮤지션으로서의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레게 댄스뮤직으로 어지럽게 도배질 당한 한국대중음악의 아수라장에 던지는 고심에 찬 질문서이다. 그는 전작인 <<Home>>에서 자신을 둘러싼 가족과 사회의 문명에 대한 탐구만으론 성이 차질 않았던 것일가? 그는 소리의 과잉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좌충우돌하는 이번의 전쟁터에서 스스로 자신을 좀 더 깊은 우물로 밀어 넣는다. 아트록, 메틀, 펑키, 사이키델릭, 내래이션 효과, 코러스, 비트와 템포의 자의적인 운용,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이 앨범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은 다만 자신이 던전 근본적인 화두를 풀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그는 '자신을 길들이려는 세상'을 향해 거대한 오프닝인 <The destruction of the shell>에서부터 니이체를 불러내는 웅장한 마무리인 <The Ocean>에 다다를 때까지 끊임없이 묻고 대답한다.
그러나 9분 53초에 이르는 거대한 서두인 3부작 <껍질의 파괴>는 그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음악적 역량으로 하여금 무리하게 총동원령을 내린 듯한 인상을 숨길 수 없다. 종횡무진하는 그의 신서사이저는 감당할 수 없는 힘겨운 짐을 지고 언덕을 올라가는 신화속의 인물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의 종착역인 <The Ocean>에서 빛나는 그의 내면의 서술은 이 악전고투의 마지막 훈장이라고 할만한것이다.
그는 전작에 이어 또다시 하나의 주제로 하나의 앨범을 구성하는 컨셉트에 도전했다. 이동규와의 듀엣이 인상적인,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소녀 취향적인 발라드 <날아라 병아리>마저 과거의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미래에 대한 서정시인 것이다.

 

4장 - N.EX.T 한국 록밴드 역사의 극점을 기술하다.

 

서태지, 정석원과 함께 90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적 감수성을 대표했던 싱어송라이터이자 셀프 프로듀서인 신해철은 현란한 시퀀서 사운드의 통과제의를 거쳐 마침내 4인조 록밴드인 넥스트라는 기항지에 도달했다. 댄스뮤직의 일방통행이 횡행하던 1995년의 시점에서 그와 그가 속한 밴드의 의의는 숱한 이견과 질시 어린 의혹에도 불구하고 결코 과소평가되어질 수 없다. 신해철의 음악적 순례는 서구 대중음악의 한국적 수용에 관한 일차 정지 작업이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넥스트는 절대절명의 승부처에 돌입하고자 한다. 그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도에 있어서 록 음악의 헤게모니 획득이다.
기타리스트 김세황을 위시한 이 4인조는 밴드의 리더가 7년에 걸쳐 쌓아 놓은 명성을 바탕으로 주류 한국 대중음악의 관성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을 감행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로 과격하게 입을 떼고 <Komerican Blues>를 통해 혼돈으로 몰아 넣으며 <The Age of No God>이라는 계산된 소음의 터널을 통과하기도 하고 <Requiem for Embryo>로 이 밴드의 리더가 줄기차게 추구해왔던 지성적인 장르 혼합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Hope>라는 의외의 중용성을 타진해 본다. 이 앨범의 상업적인 연착륙을 유도했던 <힘겨워 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극단적인 메틀과 키보드가 중심이 되는 테크노 사운드, 그리고 창과 사물이라는 국악적 요소까지 뒤엉킨 초대형 앨범인 이 앨범의 한가운데에서 신헌하게 빛나는 발라드 넘어이다. 이 노래가 신선한 것은 단순히 수없이 오버더빙된 아카펠라 스타일의 도입부, 혹은 어커스틱 및 일렉트릭 기타가 휘몰아 가는 장렬한 후렴부의 클라이맥스와 정교하게 짜인 솔로 애드립으로 요약되는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이 노래의 응축된 폭발성은 이 노래가 포착하는 내용이 단순한 구애 혹은 이별의 정감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의 벽 아해에서 신음하고 있는 동성동본의 연인 혹은 부부의 절망과 희망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전율스럽도록 혼란한 이 앨범이 정녕 한국적인 것은 곳곳에서 보이는 국악적 기능의 결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혹은 한국 사회 전체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비판의식이 아니라 서구적 관점과 방법론으로 서구를 극복할 수 있는 '다음'을 위한 완전연소였다는 점이다.
전작 다음으로 이 앨범이 소중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 앨범의 텍스트들이 1995년이라는 위태로운 반환점을 온 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낙관과 비관이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는 그 인식의 육화 과정이 바로 이 앨범의 전정한 실체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앨범은 단순한 선율과 리듬과 메시지의 조합 그 이상의 울림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이와 같은 한계 효용 가치를 분사한 앨범은 이 이전에는 없었다. 프로그레시브와 테크노적 성향이 강했던 초기 3인조 편성에서 본격적인 풀밴드로 전진한 앨범 <<WORLD>>는 그와 그의 동료들이 순례해 온 모든 음악의 여정이 총동원된, 그야말로 90 중반의 기로에 선 한국 대중음악의 시금석이 될 만한 땀의 결정이다. 이 앨범은 어쩌면 한국 록 음악의 '지나간 미래'일지도 모른다.

서구에 60가 있었다면 한국에 70가 있었다. 신해철의 방대한 디스코그래피 중 주목을 요하는 사운드트랙 앨범 <<Jungle Story>>(감독 김홍준, 윤도현 주연)의 진정한 컨셉트는 70의 한국 대중음악과 한국 사회에 대한 90 음악감독의 고고학이다. 그러나 그 접근의 현장은 서구 고전음악과 인더스트리얼과 ㅓㅇ크와 프로그레시브와 힙합과 테크노로 어지러이 물결치고 있다. <<Myself>>이후 5년만에 솔로 앨범을 선보이는 넥스트의 함장 신해철의 외도는 무명의 젊은 한국 록 음악가의 궤적을 그린 김홍준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이다.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그의 텍스트는 이 영화 안에서 영화 텍스트 밖의 사운드로 존재한다. 풀어 말하자면 영화가 내내 울려대는 주인공과 무명 밴드들의 라이브 사운드를 저 멀리서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신해철은 이 앨범을 통해 그 주변적 정관을 다시 중심으로 가져와 새로운 텍스트를 연금해낸다. 따라서 이 앨범은 동명의 영화가 모티브가 되는, 나아가 한국의 록이라는 일종의 사회학적 화두를 음악적으로 풀어낸 또 하나의 컨셉트 앨범이다. 자신이 디렉터를 맡았던 전람회의 김동률이 화답하듯이 맡은 현악 편곡을 배경으로 밴드의 동료 김세황에 의해 펼쳐지는 장렬한 기타 솔로 오프닝을 지나면 산울림의 78년의 걸작 <내 마음은 황무지>의 인더스트리얼적 왜곡의 리메이크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 앨범의 백미는 역시 <절망에 관하여>와 <70에 바침>, 그리고 <백수가>라는 골든 트라이앵글이다. 이 세 트랙은 3주만에 구상에서 믹싱까지 마쳐야 했던 가혹한 작업 조건을 무색케 하는 개성적인 통찰력이 아우러진다. 일방적인 댄스뮤직 문화에 대한 가이사의 검인 <아주 가끔은>은 하나의 전복적 코드. 이 트랙은 당대 우리 문화에 대한 하나의 퍼즐이다. 영화가 줄곧 무거운 데 반해 이 앨범은 심각하면서도 재기발랄하다. 영화가 자신의 주제만을 집중함으로써 실패했다면 신해철의 앨범은 자신의 주제를 다채로운 방법으로 풀어낸다. 이 앨범을 통해 신해철은 멀티 아티스트로서의 자신의 권능을 유감없이 증명했다.

1064년 로버트 무그 박사의 연구소에서 탄생하여 새로운 음향의 질서를 만든 이 20세기의 전자악기는 웬디 카를로스라는 청년 음악가가 바흐의 음악을 연주한 <<Switched-on Bach>>(1968)라는 앨범이 예상을 뒤엎고 백만장이 넘게 팔 리는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 무소불능의 악기 혹은 기계는 1980년 조용필의 <단발머리>의 다양한 효과음으로 대중의 머리 속으로 각인되었다. 신서사이저는 대중음악은 물론 현대의 모든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기의 음향이 되었다. 지축을 울 리는 극장의 광대한 효과음에서 댄스홀의 작열하는 리듬 파티에 이르기까지 이 악기가 닿지 않는 곳이란 없다. 이 전자 합성음향은 어커스틱 악기에 의한 자연의 소리를 인공적인 시뮬라크르의 세계로 바꿔 놓는다. 그것은 바로 문명의 진혼곡이며 실제로 70 후반의 몇몇 전위적인 대중음악가들에 의해 테크노 뮤직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90대의 음악감독인 신해철은 록 밴드 네스트의 수장으로서의 역할과 <정글 스토리> 영화음악감독으로서의 종종 걸음속에 윤상과 파트너를 이루어 자신의 음악의 두 번째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댄스ㅗㄹ 뮤직에 의해 피상적으로 전락했던 테크노 사운드의 복권을 주장하는 신속한 게릴라 전투를 벌인다. 이름하여 <<노땐스-골든 힛트 일집>>. 굳이 제목이 아니더라도 여기에 실린 여덟곡의 음악으로 몸을 흔들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두명의 젊은 음악가들은 컴퓨터로 찍어낸 선율과 리듬이 아닌 한 악절 한 악절을 아날로그의 수공으로 박음질을 하면서 음향으로 환치된 세계에 대한 성찰이라는 정신의 춤을 은연중에 제시한다. 패닉의 앨범이 무제한적인 공격의 강박관념으로 팽팽하다면 윤상과 신래철의 조우는 만만치 않은 이들의 이력만큼이나 느긋하다. ""라는 앨범 제목에서 이미 제시되듯이 이 특이한 막간극이 아이돌 스타 시스템의 댄스뮤직에 의해 오용/남용된 테크노 사운드의 명예회복과 이 시대의 배경음향으로 박제된 신서사이저의 신원인 셈이다. 이 두명의 신서사이저 주자들이 엮어내는 원초적인 아날로그 신서사이저들의 향연은 의외로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모두 여덟 개의 수록곡과 제목도 없이 마지막에 붙은 하나의 보너스 트랙은 속지의 일러스트에서 희화적으로 묘사한 '(천편일률적인 댄싱 머쉰 사운드의)통행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라는 한편의 뼈 있는 농담이면서 이 두명의 싱어송라이터가 가혹한 쇼비즈니스의 장터에서 이토록 버티게 해준 가장 근본적인 동력 중의 한 요건인 도시적 서정의 속살을 자연스럽게 엿보게 만든다. 이 앨범엔 피상적이 ㄴ'피크'가 존재하지 않는다. <질주>와 <반격>이라는 전후반부의 구심점의 가운데에 위치한 <월광 Moon Madness>의 복합적으로 설계된 프레이즈가 분만하는 내성적인 성찰은 재킷에서 받은 골계적인 인상을 거두게 한다. 이 앨범은 우리의 청각 경험을 일원화 시킨 주범인 이 악기/기계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디지털의 묵시록이다.
풀 밴드의 결성을 자축했던 대작 <<세계>>(1995)이후 신해철은 96년을 심야 방송의 인기 DJ로, 영화의 음악감독으로, 그리고 윤상과의 프로젝트 애럼 제작으로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97년 넥스트의 차기 앨범을 개봉하기 전 거대한 스케일의 발라드 <Here, I stand for you>와 동계 유니버시아드 폐막식에 쓰인 연주곡 <아리랑>을 담은 싱글로 새해 인사를 한다. 믹싱은 여전히 믹 그리솝. 단 두 곡만이 실려 있지만 김덕수 사물놀이 패와 협연한 <아리랑>은 전작에서 시도했던 국악기와의 협연을 (그 자신의 표현대로) 한발짝 더 밀고 나가 본다. 이 밴드의 프로듀서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세계 시장의 문을 두르리기 위해선 고유의 전통적인 음감을 경합하는 실험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약속을 스스로 이행했다. 그리고 현악 편곡에 참여한 후지마루와 토모다 카이아키 오케스트라와 만난 <Here, I stand for you> 에서 두텁게 형성된 사운드 텍스트는 이 밴드의 하모니가 비등점에 도달해 가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하여 90 유일의 스타 밴드였던 넥스트는 너무나 이른 백조의 노래를 완성한다. 이들의 마지막 앨범<<Lazenca>>는 넥스트에서 신해철로의 귀환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도약을 암시하는 90 한국판 스페이스 오딧세이이다. 90 전반을 수놓은 셀프 프로듀서 중의 극히 드문 생존자인 신해철은 밴드의 존속에 대하 ㄴ힘겨운 사슬에서 벗어났지만 애니메이션을 모티브로 한 록 사운드트랙의 희망은 지켰다. 문산에서 런던을 오간 레코딩-믹싱-마스터링의 성취도는 한마디로 놀랍다. <lazenca, Save us>와 <The Hero>는 서구 진출이라는 머나먼 실크로드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넥스트라는 이름은 이제 역사의 뒤안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라젠카>>앨범의 웅장하고 비극적이며 도도한 SF적인 상상력, 그리고 95년 <<세계>>앨범의 <Requiem for Embrio(태아를 위한 진혼곡)>>같은 섬뜩한 문명의 묵시록, 94년 <<존재>>앨범에 수록되었던 <이중 인격자>나 <껍질의 파괴>같은 거칠 것 없는 감수성의 정력적인 질주는 지금 들어도 여전히 감동적이다.

 

5장 - 이국에서 새로운 전환을 구상하다

 

서태지와 신해철. 90 한국 대중음악을 수놓은 이 두 음악 감독은 시장에서의 영향력의 차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팽팽한 평행선을 그려왔다. 신해철이 대학가요제의 그랑프리 스타로서, 그리고 스스로 밝힌대로 '고뇌하는 비겁자'로서의 엘리트적 카리스마를 뿜어냈다면 서태지는 '거침없는 낙오자'로서의 영웅적인 카리스마로 90 한국 대중문화의 구도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똑 같이 둘 다 밴드와 댄싱그룹을 해체시키고 솔로가 되어 공교롭게도 같은 시즌에 롤백한다. 이미 많은 논란을 낳았드싱 서태지의 앨범은 너무나 짧고 신해철의 앨범은 너무나 과잉이다. 신해철은 본격적인 테크노 뮤지션으로의 변신에 앞서 자신의 지난 디스코그래피에서 뽑아드 ㄴ넘버들을 테크노로 재편하여 첫장의 CD에 담고 두 번째 장에선 세 개의 버전으로된 <일상으로의 초대>를 비롯한 신곡을 담았다. 테크노의 사운드 컨셉트에 대해 신해철은 결코 초심자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그의 이전 앨범들, 가령 <<Myself>>나 <<Jungle Story>>, <<NoDance>>를 통해 기억하고 있다. 그는 테크노가 이땅의 대중들에게 느닷없이 생소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치 않는다. 이 주도면밀함이 (그의 적대자들에겐 참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CD1의 리메이크 기획을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월광>이라 ㄴ<재즈카페>의 신버전은 그가 그저 옜날의 영광을 되새김하려는 추악한 의도가 아니었음을 조용히 증명한다. 그는 필 니콜라스의 트렘펫 솔로의 지원을 받으며 다양하게 고안된 자신의 보컬 튜닝으로 기존 두 개의 <재즈 카페>버전에 정교한 무궁동의 새로운 해석을 추가한다.
세기의 막바지에 발표한 모노크롬은 입체적인 표정을 지닌 이 90 한국음악감독의 또 다른 극단의 초상이다. 그는 세계 대중음악의 수도인 런던의 한복판에서 영국인 동료들과 가장 과격하고 가장 도전적인 실험을 몰아붙인다. 그는 오리엔탈리즘의 리듬의 혼과 서구 로큰롤의 사운드 테크놀로지를 극적으로 조우시킨다. 정력적인 자신감으로 무장한 이 앨범의 트랙들은 신해철로 하여금 언더그라운드의 블랙홀로 인도한는 것이나 진배 어뵤다. 그는 음악 세계의 중심지에서 변방의 몸부림이 어떻게 유효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과감한 선언문을 작성했다. 그러나 이 앨범은 매너리즘으로 황폐화하기 시작한 한국 대중음악계로부터 처절하게 유배당한다.
비트겐슈타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미래'(NEXT)를 구상하고 했던 90의 음악감독이 바로 그 미래의 첫 해에 뽑아든 밴드의 헤드 카피. 80의 열망과 90의 혼돈을 헤쳐 온 철학과 중퇴의 이 386세대의 뮤지션은 런던을 거쳐 뉴욕으로 완성한 신작을 통해 그 특유의 수사학적인 통찰력을 예리하게 집중시키는 한편으로 로큰롤과 일렉토로니카, 그리고 랩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스펙트럼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그러나 무엇보다도 효과적으로 추출하고 있다. 마치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처럼 스스로를 '우끼는 전자가극단'이라고 지칭한 이 앨범 <<A Man's life>>의 화두는 수컷, 곧 남성이라는 젠더의 내면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앨범 속의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으로 요약된다.
"수컷들이란 절반의 허세, 그리고 절반의 콤플렉스로 이루어져 있다. 배를 잔뜩 부풀린 복어의 낯짝이 사실은 새파랗게 겁에 질려 있는 것처럼... 웃기는 건 섹스할 때도 무능력해 보일까 초조해 하는 의외의 소심함이지만, 웃기지도 않는건 그러구 난 뒤에 허탈해 하고 고독해 하는 의외의 예민함이다..."
앨범을 열면 20세기 전반의 서구 지성사를 달구었던 한 아웃사이더 철학자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산업사회 한국의 남성성 사이의 기묘한 부조화가 흐르기 시작한다. 진지함과 통속, 무거움과 빈약함 사이의 반목 같은 것. 그는 왜 1차 세계대전으로 이성으 ㅣ붕괴를 경험했던 서구의 '인디'(?) 철학자를 뇌리 속에 불러낸 것일까?
4년 7개월만의 귀국과 함께 지난 가을을 달구었던 서태지의 컴백 앨범이 랩과 메틀의 잡종교인 하드코어의 지독한 질주로 이루어졌다면 신해철의 2000년대 버전인 비트겐슈타인의 한국판 '남자의 인생'은 서두에서 인용한 <수컷의 몰락>의 독백처럼 신해철 특유의 아포리즘이 더욱 짙은 향기를 발하는 가운데 장르의 순례자로서의 그의 음악혼이 화려하게 그리고 우울하게 때론 열정적으로 전재된다. 하나의 테마를 극적으로 구성한 이른 바 '컨셉트 앨범'에 관한 한 이 땅에서 신해철의 오른편에 설 수 있는 자는 없다. 그것은 이젠 사십대로 들어선 이 음악감독이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지적 통찰력을 동시에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4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이 신작 앨범은 자신의 내면에 비친 한국 남성(성)에 대해 음악으로 기술한 인류학적 보고서이다.
노래들은 넘치는 해학과 가슴 저미는 아픔, 그리고 진지함과 냉소가 록과 랩, 그리고 일렉트로니카적인 사운드 매커니즘으로 팔색조처럼 하나씩 날개를 펼친다. 미묘하게도 이 앨범에는 복고적인 울림이 있다. 어쩌면 이 음악감독과 젊은 동료들은 20세기의 막다른 골목에서 이 세기의 정점이었던 비틀스의 1967년 걸작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획득했던 너비와 깊이에 대해 도전의 장갑을 던지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이 앨범의 백미는 전편에 걸쳐 잘 조율된 응집과 여백의 조화이다. 달콤한 통속성의 유혹을 거세한 이 말과 음악의 향연은 노래마다 묵직한 여운을 길 게 남긴다. 특히 열 번째 트랙 <The Pressure>는 십대에서 육십대까지 한국 남자들이 안고 있는 '압박'을 극한적인 랩과 깊은 일렉트릭 기타의 리프, 그리고 초조한 음향심리학을 빚어내는 테크노 사운드가 거대한 융합을 이루는, 그야말로 '올해의 노래'로 추천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역작이다. 해학이 넘치는 이 위악의 미학은 신해철이 역시 독보적이다.

 

대중 음악 평론가 - 강 헌